모란장

종자 밟기 2009. 2. 11. 20:48

- 프롤로그 -

어느 항구 마을

이제는 어부도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도 없는 이곳은

제국군의 군사 시설이 밀집된 특수 지구이다.

어선이 사라진 돌담의 포구엔 군함의 화약 냄새가 진동하고

등대가 보이는 마을 어귀 술집은 이제 총검을 세운 군인들의 땀내만이 남아 있다

그나마 시내로 들어서는 길목에 남아 있는 목조집이 아니라면

이곳은 영락없는 누런 이빨을 세운 야수의 입속일 것이다.

폐가를 부서 만든 철탑들이 하루에 세 번 기나긴 증기를 내뿜으면

어느새 조용히 차를 마시던 어르신들도 할일 없이 거리를 나와

이제는 재 빛을 잃어 가는 바다의 석양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예전엔 밤이 되면 별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던 그들은

점점 사라져 가는 볓빛을 등진 채 오늘도 모란장의 이야기를 듣는다.

모란장

붉은 모란 꽃이 언제나 좁은 골목길을 수놓고

목조건물과 철 탑 사이에 뿌리를 내린 붉은 기와의 밤꽃

그곳에 오는 손님은 오직 장군들과 지방의 유지들 뿐이지만

그 안에서 펼쳐진 이야기는 다음날 마을의 수놓는 달콤함이다.

모란장의 주인 키쿠치가 붉은 기모노를 입고 밖에 나오면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는

막사 안에 잠든 병사를 깨우고 노인들의 마음에 청춘을 불러 일으킨다.

모란장 제일의 기녀 사쿠가 춤을 추면 달콤한 산바람이 전쟁에 찌듯 바다의 비릿한 냄새를

사라지게 만들고 키쿠치의 향기를 더욱 멀리 퍼지게 만든다.

유코의 금소리가 사쿠의 춤과 함께 퍼지면 집을 떠난 병사의 영 마져 바다를 건너 오고

키미코의 웃음소리가 방안에서 세어 나오면 오늘도 한 연인의 별이 바다 속에 사라진다.

그리고 아침이 찾아오면


키쿠치가 벗어 놓은 옷감에선 젖어버린 술냄새가 진동하고 사쿠는 오늘도 밥 대신

이상한 음식을 요구하고 유코는 술김에 어지럽힌 방안을 나무라고 키미코는 줄담배를

피우며 빨래를 걷고 청소를 하는 일군들을 혹사 시킨다.

모란장 건너편까지 이어진 모든 화단에 물을 주는 일이 끝나면 이어지는 건 신경질만 부리는

게이샤들의 뒤치닥 거리 그것도 수십명의 잡일군 중 유독 나에게만 시키는 일들이었다.

같이 이 모란장에 들어온 쿠도는 단지 얼굴이 미남이라는 이유로 요리장 조차 누리지 못한

호사를 누리고 같은 일군들의 눈치는 나에게 향했다.

'기무'

그것이 나의 이름이다. 동시에 이 모란장에서 술 다음으로 많이 불리는 단어이다.
Posted by 나이브스
,